PATHOS OF THE SPACES PART.2 : 우디 앨런과 여행객들



 우디 앨런의 영화들 중에는 제목에 도시의 이름이 들어가는, 도시 시리즈가 있다.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 <미드나잇 인 파리>, <로마 위드 러브> 등의 영화들인데, 각 도시 관광청의 협찬 탓도 물론 있겠지만 각 도시의 통념적 파토스 (혹은 페이소스’)를 보다 직접적으로 전달하고자 함도 있지 않나 싶다.









 <로마 위드 러브>는 여러가지 소동과 유머러스하고 비현실적인 에피소드들을 엮어 밝고 활기찬 동시에 조금은 소란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는 파리라는 도시의 유구한 인문학적, 예술적 역사와 유산, 그에 대해 타국인들이 품고 있는 모종의 판타지를 미국인 주인공의 환각(?)으로 풀어낸다.







 그 중에서도 압권은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인데, 보편적 윤리에서 한참 벗어난 애정관계를 바르셀로나라는 자유분방한 남부 유럽 도시의 이미지에 힘입어 거침없이 이야기한다. 파토스(감성)가 로고스(이성)의 반대 개념이란 점을 생각해 보면,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 속 주인공들의 말도 안 되는 애정관계들이 필연적 인과관계에 관한 것이 아니라, 순전히 100%  감정적 충동에 의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런 충동의 불길에 기름을 부어주는 것이 바로 바르셀로나라는 도시다.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라는 이 영화의 한국어 번안 제목은, 이야기를 풀어나감에 있어서 그 이야기의 배경 공간이 주는 감성의 역할이 생각보다 크다는 걸 한 방에 깨닫게 해 주는 좋은 예다.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는 영화 내용에 대한 강력한 스포일러인 동시에 나름 주인공인 비키를 아예 극 중 조연으로 밀어 버린다. 거기다가 '바르셀로나'라는 중요한 표상 또한 무시함으로써 도시 특유의 파토스를 순식간에 사랑과 전쟁 식의 치정으로 전락시킨다.











 우디 앨런의 영화들은 이렇게 끊임없이 인간들의 감정을 충동질 한다. 동경하던 것에 회의를 느끼게 하고, 사랑스럽게 여기던 것에 권태를 느끼게 한다. 반대로 이해할 수 없던 것에 끌리게 하고, 모르는 것에 도전해 보고 싶게 한다. 이국의 도시라는 이질적 공간이 바로 그런 충동을 더욱 강력하게 하는 요소가 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우디 앨런의 도시 시리즈들은 사람들이 여행을 동경하는 이유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우리는 제3, 외부인의 입장에서, 도시들의 어떤 이미지를 사랑한다. 그 도시에 발을 디디기도 전에 우리는 그 공간에서 어떤 느낌을 느끼고 싶은지 이미 정해놓고 출발한다. 남부 유럽의 강렬한 햇살과 자유분방함, 혹은 파리의 낭만적이고 지적인 느낌과 같은 것들은, 이질감이 없어지고 그 공간에 동화되기 시작하면 사실 잘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도시의 감성이란 것은 온전히 여행자만이 느끼는 특권일지도 모른다. /Suzy Kim